고등학교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친구신청을 해왔다. 이 친구는 흔하지 않은 진로를 선택해서 볼 때마다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는 친구다.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해서 자연과학을 전공하는 나같은 친구들, 공대에 진학한 친구들, 의대, 치대를 간 친구들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웠고, 문과로 바꿔서 경제, 경영, 법을 전공하는 친구들도 많았지만 순수 인문학, 그것도 철학을 전공하는 친구는 이 친구 뿐이었던 것 같다. 그리 친하지는 않았고 많은 대화를 해본 것도 아니었지만 항상 배울 것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했고 언젠가 더 깊은 대화를 하고싶은 친구였다.

대학도 같은 곳을 다녀서 지나다니며 한두 번씩 마주쳤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만남은 대학교 4학년때 였다. 천문대에 가느라 순환도로를 걷고 있는데 전파천문대 쪽에서 나온 이 친구를 만났다. 여기서 뭐하냐는 질문에 생각을 하느라 산책하고 있었다는 대답에 '참 너답다' 라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에 대해서는 그런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천문학을 좋아라 하고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친구도 철학과니까 사색을 즐길 것이라는 그런 '이미지'.

사실 그 친구의 '생각'이란게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현실적 고민이었을 수도 있다. 곧 군대에 간다고 했었는데 그런 고민. 내가 모르는 진로에 대한 고민. 아니면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이었을 수도 있다. 아쉽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아니어서 개인사를 속속들이 알고있는 친함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인문학적 감성이라는 것은 단순히 이미지만은 아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는 꾸준히 책을 읽고 사유하고 글을 쓰면서 그렇게 인문학적 감성을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빠르고 자극적인 정보를 여러 대중매체를 통해 우겨넣기보다 조금은 천천히, 느리게 그렇게 자신을 가다듬었을 것이다.

책과는 거리가 멀고 글쓰기가 어색하고, 깊이 생각하기보단 빠르게 생각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있다. 어릴때는 그런 것이 불필요해 보였지만 요즘에는 나에게 부족한 인문학적 감성을 채우고 싶은 생각을 한다. 그 친구의 이름이 페이스북에서 떠오르는 순간 다시한번 자극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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