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폐지? 통합? 이전?
민주당의 국공립대 통합얘기와 새누리당의 세종시로의 이전 얘기를 가지고 발끈하는 서울대생들을 많이 본다 (인터넷 상에서). 저러한 정책들의 취지는 과밀화된 서울의 기능을 지방에 분산시키기 위한 것과 한국내 뿌리깊은 학벌주의를 타파해 보자는 것이다. 두 가지 모두 격하게 동감하며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단순히 서울대를 이전시키거나 서울대의 이름을 떼서 국립 제 1대학 뭐 이런식으로 이름 짓는걸로 해결되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은 한다. 이 사안에 대한 많은 서울대 학생들의 비판은 (특히 학내 커뮤니티에서) 서울대를 어떤식으로든 통합, 이전하면 서울의 과밀과 학벌주의 타파는 커녕 그냥 서울대만 수준이 낮아지고 다른 대학들이 (특히 사립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가 많다. 여기까지도 어느정도 할 수 있는 비판이라 생각되는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있기에), 가끔 보이는 "서울대만 수준이 낮아지고" 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보이는 글이나 댓글들을 보면 참 어이가 없다. 자신이 졸업한 모교의 위상이란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기에? 만약 그것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회면 그게 제대로 된 사회인가?
내가 졸업한 "부산과학고등학교"는 "부산과학영재학교"를 거쳐 "한국과학영재학교"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 과정에서 설립된 "장영실과학고"는 "부산과학고"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동문들 사이에 모교의 교명 변경에대한 반대와 장영실 과학고의 교명 변경시도에 대한 반대가 있었는데, 사실은 난 그 동기를 감정적으로 이해하지만 이성적으로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일단 내 모교의 이름이 바뀐다는것이 감정적으로 기분이 안좋았고 후배들이 후배가 아닌 것처럼 느껴저서 싫었지만 "영재학교" 후배들이 기수를 이어가고 동아리의 명맥도 유지된다기에 (개인적으로 동아리를 매우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부분이 더 절실했는데, 결국 동아리의 성격이 바뀌는 어이없는 일이 또 발생했기에 지금은 뭐...) 별 상관없게 생각했다. 장영실 과학고의 교명 변경은 그들이 바꾸고자하는 논리를 더 이해하지 못했기에 감정적인 반대를 하긴했지만, 역시 뭐 나에게 큰 상관은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현재 얘기되는 정책들로 한국사회의 큰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있다면 이름이 바뀌건 위상이 낮아지건 상관없다. 그런데 그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꽤나 충격적이다. 모교의 위상이 낮아지는 것에 (낮아질 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분개하는 사람들을 보자니 내가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 만으로 이미 많은 기득권을 가졌구나 싶다.
과학고 폐지론에 대해서도 감정적으로 아쉬움이 많지만 특목고가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나쁜기능을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야 과학고에 들어가고 서울대에 들어가서 수준높은 교육을 (이 부분에도 다양한 거짓말이 숨어있지만) 받을 수 있었고 좋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그것이 순기능 이라면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에게 과도한 보상을 하는 구조일 수 있다는 것은 역기능일 것이다.
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참 힘들다. 그렇다고 살아남기 위한 조건에 "서울대"니 "과학고"니 하는 이름들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거기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게 더 암울하지 않은가? 경쟁을 완화해서 모두가 살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해 보는게 좋지 않을까? 서울대 폐지, 통합, 이전이 그 답이 아닐 수 있다면 답을 찾기위해 노력하자. 말도안되는 반대를 하지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