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하나. 


사실 연아가 복귀를 선언하고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기로 결정 했는데 그게 내가 사는 런던이라는게 그닥 와닿지 않았다. 나름 연아의 팬이긴 하지만 평소에는 그리 열성적이지 않다가 경기를 보면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는 수준이다. 세계 선수권 전에 출전했던 NRW나 전국 선수권은 결과만 보고 경기 영상을 잘 보지도 않았다. 표를 사 놓고도 그냥 그랬는데 화요일 연습을 봤다는 이 동네 형의 글을 보니 이게 예사 기회가 아니구나 싶었다. 부랴부랴 일정을 확인하고 쇼트 프로그램 전 수요일 연습에 갔는데 15불에 이런 호사가 누릴 수 있다니! 그래도 쇼트 까지는 연아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게 감동의 전부였다.


쇼트 경기를 조마조마 지켜보고 예상보다 낮은 점수에 잠깐 분개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목요일을 보내고 금요일 프리 연습을 보러갔다. 표를 사려고 하니 공짜란다! 심지어 공짜라니! 연아는 마지막 조 연습이고 그보다 먼저가서 중국의 떠오르는 신예 리지준의 연습을 지켜봤다. 사진으로 본 것 보다는 안 예뻤지만 나름 귀여웠는데 너무 작았다. 연아의 기럭지에 감탄하며 마지막 조를 기다렸다. 마지막조가 들어왔는데 캐나다의 캐롤린 오스먼드가 예뻤다. 몇명의 연습이 지나고 연아의 연습차례가 되었다. 레미제라블 노래가 나오는데 2주전에 레미제라블을 본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다. 노래와 함께 연아의 연기를 감상하는데 점점 심장이 뛰기 시작하더라. 그러다가 'On my own'으로 노래가 바뀌는 순간, 그 노래와 함께 연아의 연기를 보니 갑자기 소름이 쫙 돋더라. 그러고는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는 감동이 차올랐다. 불과 연습이었지만 연아는 전체를 연기했고 자연스럽게 기립박수가 나왔다.


그리고는 경기날이 밝았다. 드레스 리허설도 보러가고 싶었는데 갔더니 그날 첫 경기표가 필요하단다. 아쉽게 발길을 돌리고 친구를 맞이하기 위해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으로 거하게 삼겹살을 구워먹고 첫 조를 스킵하고 8시쯤에 도착했다. 자리는 가장 먼 위치였지만 이미 가까이서 봤기 때문인지 그리 아쉽지는 않았다. 나름 전체를 보는 것도 좋았다. 어찌됐건 2조는 좀 지루했다. 3조부터는 조금 볼만해 졌는데 연아가 속한 4조가 다가오니 점점 내가 긴장이 된다. 나중에 연아도 얘기했지만 연습 때도 그랬고 클린연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클린을 하지 못 한다면 억울 할 것 같았다. 연아의 순서가 다가올 수록 연습의 감동도 다시 살아났다. 4조가 시작되고 코스트너와 마오가 생각보다 후한 점수를 받았다. 그래도 연습이 너무 멋졌기에 나에게 순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중요하지 않았다기보다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연아가 나오고 노래와 함께 한동작 한동작 집중해서 봤다. 역시나 'on my own'으로 음악이 바뀌는 부분에서 전율을 느끼며 그렇게 2분을 더 지켜봤다. 마지막 스핀을 도는 순간 나를 비롯한 모든 관중들이 기립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스핀과 마지막 인사까지 약 1분간 열렬히 박수를 치고나니 어깨가 아팠다. 연기는 클린이었고 금메달은 따놓은 상태에서 과연 점수가 얼마인지가 모두의 관심사였다. 148이 넘는 점수! 하지만 아무도 토를 달 수 없는 점수였다. 이어진 시상식에 홀로 선 연아는 정말 멋있었다. 합창단이 불러준 애국가도 정말 감동. 





프리 연기를 몇 번을 돌려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 감동이 다시 전해지는 것 같다. 레미제라블 음악도 너무 좋고 그에 맞춘 연기도 정말 좋다. 지금 껏 연아의 경기를 보면서 그 기술적인 부분에 감탄을 많이 했지만 전체적인 연기에서 감동을 한 적은 딱히 없었다. 이번 프로그램에 감동을 하는 건 레미제라블의 영향도 분명히 큰 것 같다. 아.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감동이여. 

런던으로 포닥 와서 고생한 것이 한순간에 상쇄된 기분이다. 힐링이란 이런 것이지.


++ 영화와 연아가 시너지를 일으켜 레미제라블 ost를 itunes에서 구매했다. 근데 좋아하는 노래 중 하나인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이 없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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