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때 경시대회 준비 하느라 조금 미리 공부 한걸로 한창 우쭐할 당시에 첫 대학 천문학 수업을 홍선생님께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 열정적인 강의에 내 얄팍한 지식은 고개들 틈이 없었고 그저 따라가는 것 만으로도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그 학기 이후 많은 수업을 듣고 연구를 하고 있지만 천문학이 제일 재미있었던 때는 역시 그때가 아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수준의 5장짜리 오르트 운에 대한 기말 리포트를 높게 평가해주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덕에 한창 정신 못 차리고 놀 때도 천문학 수업은 빠지지 않았다. 수업 중간중간에 "이거 한번 풀어봐"라는 말로 내주시는 숙제들을 하는 게 왜 그렇게 재밌었을까?

 

대학교 3학년, 동아리 활동을 한답시고 흘려보낸 2년 덕분에 전공 진입도 못한채로 천문학과 전공 수업을 들어야 했다. 태양계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1을 홍선생님께 들었다. 수업은 점점 어려워졌고 늘어진 생활패턴 때문에 수업시간에 늦을까 매번 노심초사하다가 홍선생님 꿈을 꾸고는 화들짝 놀라 깨서 겨우겨우 수업에 맞춰 들어가던 시간들. 숙제 쫓아가기는 참 힘들었지만, 나름 어려서 배운 코딩 경험 덕분에 꾸역꾸역 코드를 짜서 숙제를 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천문학을 한다는 게 참 재밌었다. 홍선생님께서 숙제에 "you are very good at coding!"이라고 쓰신 코멘트에 으쓱하며 이게 내 적성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래선지 아직도 그러고 앉아있다. 천체물리 시간에 배웠던 열적 불안정은 아직도 몇 번씩 다시 들여다보는 내 연구의 한 축이다.

 

천체물리 수업 중에 칠판에 김웅태, 조정연 이름을 쓰시고는 교수 공채 세미나 하니까 꼭 들으라고 하셨다. 두 분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시며 "참 잘한다"라는 코멘트를 하셨던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선생님께 저런 평을 듣는 연구자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기도 했다. 학위 받고 한번도 제대로 내 연구에 대해 선생님과 길게 이야기를 못 나눠본 게 아쉽다. 한번 서울대 콜로퀴움 이후에 선생님께서 별 형성률에 대한 correlation과 causality를 구분해서 설명하려고 한 부분이 좋았다는 말씀이 박사 이후 연구에 대한 유일한 대화였다. 선생님, 그게 다 선생님께서 강조하셔서 배운 대로 한 겁니다. 이 말씀을 지금이라도 드리고 싶다.

 

선생님께서 투병중이시란 이야기를 전해 듣고, 팟캐스트에서 목소리를 듣는데 가슴이 먹먹했다. 선생님의 수필집을 정규에게 부탁해서 사서 읽고 선생님의 일상을 엿보며 또 먹먹했다. 선생님께 배울 때만큼 천문학을 즐기고 재밌어하지 못하는 내가 안타까웠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그 연세까지 수업에서, 연구에서, 일상에서 그렇게 천문학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하실 수 있었을까? 언젠가부터 내가 내 연구를 그렇게 열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더 좋은 연구가 남들이 좋아할 연구가 돼버린걸 기나긴 잡 시장에서의 실패의 경험 때문이라고 치부해도 될까? 이미 열정적이지 못 했기 때문에 잡 시장에서 실패한 것일까? 선생님과 같은 눈빛으로 학문을 바라보고 싶었다. 내 눈은 언제부터 흐려졌을까. 선생님처럼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을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 2019.04.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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