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빗자루로 쓸어 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새들의 발자국 같은 흰 발자국을 남기며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러 가자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면서
가난한 아저씨가 연탄 화덕 앞에 쭈그리고 앉아
목장갑 낀 손으로 구워 놓은 군밤을
더러 사 먹기도 하면서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눈물이 나도록 웃으며 눈길을 걸어가자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첫눈은 내린다

세상에 눈이 내린다는 것과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 오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내리는 기차역 부근을 서성거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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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수록 마음에 드는 시로다.

대학교 1학년 겨울에 눈오는날 요트부 창문을 넘어 공대식당 뒤에서
코펠에 정종을 끓여 마시며 눈을 모아서 AAA만세 따위를 쓰며 놀때도
세상의 고민은 다 가진것 같았고 지나온 고등학교 생활을 그리워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니 그때 만큼 걱정없이, 생각없이 즐겁게 놀았던 때가 또 있었나 싶다.
그래도 그때는 참 나름 고민이 많았는데 말이지.

나중에 나이 마흔이 되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서른에 홀로 이러고 있는 것도 그리워 할까?
뭐 아무리 좋게 보려해도 혼자 이러는건 좋아질 것 같지도 그리워 질 것 같지도 않다.

교수님들은 포닥때가 제일 좋았다고 하는데 난 안좋으니 교수가 못 될거야.
난 안될거야 아마.
결론이 그지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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