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30일 17:00경에 늦은 점심을 챙겨먹고 기름을 넣은 뒤 토론토로 출발했다. 한시간 정도 신나게 달리다가 403에서 해밀턴에 거의 다 와갈 무렵 차가 엄청 막히기 시작했다. 아이폰을 이용해 각종 교통정보를 확인 한 뒤 우회로로 빠졌다. 403의 58번 출구로 나와 Wilson st.으로 가는데 여기도 막히는 거다. 아이폰을 확인하니 여기도 계속 막혀있다. 빡쳐서 차를 돌린 뒤 조금 거꾸로 가서 403의 55번 출구와 이어진 52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쪽으로 조금 진행하다가 5번 하이웨이를 (Dundas st.)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눈이 제법 오고 있었고 길은 눈이 약간 덮여 있었다. 403보다는 더 많이 덮여 있었다. 스노우 타이어를 믿고 갔다. 가다가 화장실이 급해서 (우회로를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 월마트에서 소변을 보고 가뿐한 마음으로 열심히 갔다. 목적지를 40km 정도 남겨둔 지점, Dundas St. W와 Postmaster Dr.이 만나는 지점 쯤에서 갑자기 차가 미끄러졌다. 처음에는 약간 비틀거리는 듯 하더니 점점 조종이 안되는 상황이 되었다. 당황해서 내가 엑셀을 밟았는지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혼란스러울 정도. 반대 차선은 교통체증 때문에 거의 멈추다시피 한 상태였지만 우리 차선의 다른 차들을 피하려고 핸들을 이리 저리 돌렸리면서 제동을 시도했는데 결국 미끄러지면서 반대 차선의 차를 내 차가 옆으로 박았다. 쿵 하는 순간 "아 씨발. 자차 안들었는데" 라는 생각과 함께 왼쪽 에어백이 터지고 약하게 유리창과 에어백에 머리를 부딪혔다. 잠깐동안 차 안에서 '에어백 열라 허접해 보이는데 나름 효과가 있군.', '아 뒤에 유리창 다 깨졌네.',  '이거 몰고 가려면 춥겠다.', '뭐 부터 해야되지?', '내 몸은 괜찮나?', '몇 대나 박은거지?', '막판에 내가 엑셀을 밟은 건가?', '일단 나가봐야 겠군.', '그전에 라디오 천국부터 끄자.'...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슬 밖으로 나왔다. 내가 박은 차에서 백인 애들 둘이 나왔고 괜찮냐고 서로 물어보고 서로 괜찮다고 했다. 조수석에 앉았던 애는 말 할때마다 퍽킹거려서 거슬리긴 했지만 내가 잘 못 한거니까 계속 쏘리쏘리 했다. 생각해보니 그건 그냥 이노마의 말투 같은 거였다. 어쨌든 다행히 그 많은 차 중에 한 대만 박았고 옆으로 박았서 그런지 마지막에 그나마 제동을 제대로 해서 그런지 둘 다 운전석 뒤로 부딪혀서 그런지 사람은 멀쩡하고 운적석 뒷 부분만 엄청 (지금 생각해 보니 그리 엄청은 아닌 듯.) 찌그러졌다. 일단 차를 옮기기로 하고 옆에 보이는 몰 (Tanglewood Plaza) 주차장으로 가자고 했다. 현장을 보존해야 할 것도 같았지만 뭐 내 잘못이 명백한 상황이니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다시 차 쪽으로 가 보니 가관이다. 운전석 쪽 뒷 바퀴는 펑크가 나있고 림이 완전 휘어져 있다. 미끄러진게 먼전지 터진게 먼전지 의심스러웠다. 뒤쪽 유리창 두개는 깨져있고 뒷 문은 찌그러져 열리지 않는 정도. 원래 조수석쪽 뒷 좌석에 큰 스크래치가 있어서 '차라리 거기를 박았으면 한번에 싹 갈면 될텐데...'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 차에 탔다. 다행히 차는 굴러갔고 조심스럽게 차를 옮겼다.



플라자에서 일단 서로 상태를 다시 확인한 뒤 퍽킹거리는 그노마가 내 전화로 911에 콜을 했다. 경찰만 부를려고 했는데, 이노마가 내가 약간 충격 먹은거 같다고 했더니 앰뷸런스까지 왔다. 어쨌든 앰뷸런스는 돌려 보내고 약간으 농담 따먹기도 하면서 담배를 피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경찰이 왔다. 리포트를 작성하는데 짧은 영어실력으로 쓰느라 완전 힘들었다. 내 차는 창문이 깨져서 추워서 손이 떨려서 더 쓰기 힘들었다. 어쨌든 이래저래 리포트쓰고 견인차를 부르려고 보험회사에 전화했다. roadside service도 가입 안했는데... ㅜㅜ 하면서. 어찌됐건 전화했더니 사고 리포트부터 하란다. 젠장. 한참을 영어로 떠들면서 얘기하는데 얘들이 갈라는 눈치라 살짝 나왔다. 전화가 길어져서 어버버 하고 있으니 퍽킹거리던 놈이 도와줬다. 위치 설명해주고, 사고 경위 설명해주고. 뭐 일방적으로 나혼자 미끄러지다 차를 박은거니 그노마가 나한테 불리하게 얘기할 거도 없을거 같아서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얘들은 가고 보험사에서 견인차 연결해 주는 곳으로 전화를 돌려줬다. 한참을 안 받더니 겨우 받아서 런던으로 간다고 했더니 45분쯤 걸릴거란다. 젠장. 추운 차 안에서 시동을 켜서 핸드폰을 충전하고 라천을 들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아저씨가 서류작성을 하는지 계속 있었는데 오더니 견인 불렀냔다. 불렀다고 했더니 알았다면서 갔다. 한참을 더 기다리니 견인차가 왔다. 견인차 아저씨도 친절하게 잘 해줬다. 내가 담배를 피니까 나보고 담배 피냐고? 자기도 핀다고. 좋은 여행이 될거라고 그랬다. 견인차는 따뜻하고 편해서 좋았다. 견인차 애들이 경찰 무전을 듣는가 보던데 사고가 무지하게 많이 났더라.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그 상황이 참 아찔하다. 그 와중에 그 정도로 그친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연쇄충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제대로 박았으면 다친 사람이 나올 뻔도 했는데, 그나마 운좋게 옆으로, 운전석 뒤로, 사람 없는 곳으로 박아서 다행이었다. 스노우 타이어를 맹신(?)하고 눈길에 60km/h 정도로 달렸으니 사고가 난게지. 사실 나야 내 잘 못이 크지만 내가 박은 차는 참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겠지. 퍽킹거리는 그노마의 말을 들어보면 갑자기 내가 미끄러지면서 비틀거리더니 점점 조종불가 상태가 되서 달려 들었다고 하던데 참 무서웠을거다. 그러고 보면 그놈들이 90년생 이던데 어린애들이 침착하게 잘 처리했네. 국도로 우회한 것이 몇 가지 패착을 동반했다. 하향등으로 볼 때와는 다르게 상향등을 켜니 눈이 제법 오고 있었다. 눈이 꽤 오는 상황에 403같은 큰 고속도로가 훨씬 안전하다. 분명히 밥먹고 출발하면서 화장실에 다녀 왔는데도 차가 막히니 오줌이 마려운건 뭔가 복선이었다. 그리고 운전하면서 몇 번 '차가 이정도로 막히는건 분명히 사고다.', '와 이 정도 눈길이면 사고 좀 나겠는데?', '갑자기 앞에서 사고나면 우짜지?', '고속도로가 안전하긴 한데...' 라는 생각들을 한 걸 보면 뭔가 사고에 대한 감이 있었나보다.


어쨌든 사람은 무사하고 차는 병신이고 내 잔고는... 상황을 지켜봐야 겠지만 고칠 비용이 많이 들면 뭐 그냥 갖다 버리고 걸어다녀야지. 겨울이라 좀 그런가. 집에 있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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