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꽤나 오래전에 했는데 띄엄띄엄 읽다가 반쯤 읽은 상태로 방치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있던 논문 심사서를 다 보낸 오늘에야 하루를 접고 책읽기에 투자할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오늘을 투자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대개의 소설을 읽을 때 처음에 속도를 붙이는게 쉽지 않다. 이 책은 더더욱 그랬는데 마지막 즈음에 다시 첫 문장을 만나면서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했다. 그리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둘의 이야기를 읽었다. 띄엄띄엄 읽으면서 거의 까먹고 있었던 도입부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다행이다. 그리곤 해피엔딩. 그리곤 이게 끝이 아니라니. 책속의 책속의 책인 셈인가. 여튼 재밌다.


책의 첫 장을 읽을 때 단순히 남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라고 읽혔고, 그 과정에서 머리속에서는 그려진 그림에는  당연한 듯 예쁜 여자 배우가 떠올랐던 듯 하다. (예컨데, 김태희, 손예진, 송혜교 등등?)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와 다시 읽은 첫 장의 그림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그릴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못생긴 여자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작가의 말에 씌여 있듯 '못생긴 여자와,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를 다룬 소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받을 수 있다'고 했다는데 인식하지 않았지만 과연 그러했구나 싶다. 그렇게 살았구나 싶다. 단순히 못생긴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못 가진자의 이야기고 실은 다수인 우리의 이야기다.


마치 킹콩과 같은 존재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시키지 않아도 엠파이어스테이트를 오르고, 가질 수 없어도 자신의 전부를 바친다. 자신의 동공에 새겨진 한 사람의 미녀를 찾아 쿵쾅대며 온 도시를 뛰어다닌다. 어떤 악의도 없지만 그 발길에 무수한, 평범한 여자들이 상처를 입거나 밟혀 죽는다. 

p. 306


자본주의는 언제나 영웅을 필요로 한다. 잘 좀 살아, 피리를 불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략) 쫓고 쫓기는 경쟁은 그 뒤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밀고 서로를 짓밟는 경쟁도 그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하메른의 어떤 쥐들도 피리 부는 자를 앞서 뛰진 못했지 -- 큰 쥐, 작은 쥐, 홀쭉한 쥐, 뚱둥한 쥐, 근엄하게 터벅터벅 걷는 늙은 쥐, 명랑하게 깡충깡충 뛰는 어린 쥐, 가족끼리 열 마리씩, 스무 마리씩 쥐란 쥐는 죄다 피리 부는 사나이를 쫓아갔어. 그리고는 깊디깊은 베저 강에 빠져버렸지.

p. 311


마치 킹콩같이. 일전에 개봉한 스파이더맨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안 예쁘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은 진정 정의감이 투철한 영웅이라는 얘기를 시시덕 거리는, 대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쥐 같은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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