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금요일에 과 애들이랑 맥주를 먹는다. 초반에 열심히 참석하다가 영어로 떠드는게 (사실상 듣는게) 너무 피곤해서 최근에는 잘 안 갔었다. 요새 애들이랑 어울리는게 조금은 편해진데다 최근에 새로 포닥자리를 확정한 뒤로는 연구실에 찾아와서 술마시러 가자는 애들한테 '아 뭐 좀 할게 있어서...'라고 하면 '하긴 뭘해. 넌 이미 프린스턴에 자리 잡았잖아'라고 받아쳐서 그냥 따라간다. 


오늘은 맥주를 먹고 괜찮은 헝가리 식당이 있다고 저녁 먹으러 가는 모임이 있었는데, 이것도 빠질라고 했는데 호기심도 생기고 해서 따라갔다. 덕분에 간만에 5시간을 넘게 외국애들이랑 떠드는데 여전히 제대로 대화를 쫓아가진 못하고 대화의 흐름만 이해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밥먹는데 앞에 앉은 여자애가 자기 이름 발음이 어렵다는 얘기를 하다가 누가 이니셜을 따서 'BJ'라고 불렀다. 그랬더니 자기가 미시건에 있을 때 자주 'BJ'라고 불렸는데... 라면서 이런저런 일화를 얘기한다. 그러고나니 애들이 걔를 부를 때 계속 'BJ'라고 부르는데 그게 놀리는 것 같다. 그 여자애는 '아, 또 괜히 말했네. 앞으로는 닥치고 있어야 겠다. 다시는 어디가서 BJ와 관련된 일화를 말하지 않겠다.'라는식의 얘기를 한다. 내용은 잘 알겠는데 도대체 왜 'BJ'가 놀리는 말이 되는지를 알 수 없다. 


이런건 사실 한두가지가 아닌데, 더 적응이 안되는 건 음담패설이다. 대개의 음담패설은 내가 세부적인 사항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다 갑자기 p뭐시기 라던가 v뭐시기 라던가 d뭐시기 라던가 하는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그 단어를 바탕으로 대화를 다시 재구성 하다보면 '아! 이거 완전 수위가 높은 음담패설이었구나'라는걸 깨닫게 된다. 오늘 자리만 해도 반이 여자고 반이 남자인데 이런 대화는 너무 자연스럽고 아무도 불쾌해하지 않는다.


그리고 과에 게이가 한명 있는데 얘를 두고 게이 농담도 참 쉽게 한다. 오늘의 가장 재밌었던 대화는 이런거다. 


A가 뭐라뭐라 헛소리를 했다. (나랑 같은 그룹 대학원생 남자애)

T (얘가 게이임): Fxxx you. (손가락과 함께)

A: Seriously? Do you promise me?

T: I promise you. I'll be your home tonight (윙크)


한가지 더. 술자리, 커피타임, 점심시간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화에서 B's boob이 대화에 자주 출현한다. 물론 B앞에서. 참고로 B는 A의 여자친구. 그러면 내 오피스 메이트 D가 '또 얘 가슴얘기 나왔네'라며 탄식한다. 마치 남자들끼리 술마시다가 군대얘기 나오면 깔대기니 어쩌니 하며 탄식하는 것처럼.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가 부럽다거나 우리도 이래야 한다는건 절대 아니고 그냥 다르다는 느낌. 다만 이 사회에서는 게이나 여성이 스스로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거나 차별을 받는다는 시선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기에 공공연한 농지거리가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스랖에서 봤던 모든 가벼운 성적인 농지거리도 (심지어 전혀 의도치 않았음에도 듣는사람이 조금이라도 상징성을 느끼고 성적 불쾌감을 느낀다는, 가끔 너무나 이해하기 힘들 예들에도) 희롱으로 간주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몇몇 여성주의 중심의 운동권 단위에서 나타나는 사건들의 경직성은 안타깝다. 안타까운 것은 과도하게 교조화된 여성주의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그런 경직된 사고를 가지게 된 이유로 주장하는 남성들 쪽으로 '기울어진 경기장'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왜 너희는 유연하지 못해?'라고 할 순 없는 거겠지. 


외국애들이랑 술마시면 말할 시간보다 듣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서 참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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