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 나기를 길을 잘 찾게 태어났다. 오늘 부산에 속해 있지만 거의 의정부 정도로 떨어진 정관에 있는 집에 술먹고 찾아가는데 이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버스 정류장에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그 과정을 쓰잘데기 없이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길을 잘 찾는데는 두 가지 정보 처리 능력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 전체적인 정보와 (global information) 부분적인 정보를 (local information) 잘 조합해서 처리해야 한다. 즉, 종합적인 정보 처리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면 이런 식이다.


예컨데, 나는 기본적으로 길을 찾기 위해 전체 지도를 본다. 그러고 나면 내 위치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인식 할 수 있다. 목적지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면 전체적인 정보가 숙지되고 대략적인 방향을 알 수 있다. 출발하면서 내린 버스에서 본 막차 시간을 꽤나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고 내릴 위치에 대해서 스마트 폰을 이용하여 정류장을 금세 확인 할 수 있었다. 혹시나해서 어머니께 보낸 카톡에 어머니가 답하지 않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 핸드폰이 꺼져 버렸지만 전반적인 정보를 한번 확인 했으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내릴 정류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내려서 진행 방향인지 역 방향인지도 이미 확인한 상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목적지가 '재흥 아파트 102동 316호'라는 국소적인 정보가 들어 있지 않다면 근처에 와서 헤멜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국소적인 정보는 정확한 동, 호수를 기억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만 한번 방문 한 곳의 주변 사물로 부터 파악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아파트 입구로 진입해서 두번째 아파트 중 층계에 진입해서 첫번째 등의 센서가 작동하지 않고 3층의 왼쪽인데 문 앞에 가스 계량기의 수치가 대략적으로 400대에 머물러 있는 집'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경험에 의지한 정보는 일견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정보를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기억속에 저장하는 것이 습관화 되어 있기에 꽤나 쓸만하다. 다만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경험에 의지한 정보는 변수를 가져온다. 이번 경우에는 어제는 층계에 진입할 때 작동하지 않았던 센서가 오늘은 작동해서 불이 켜지면서 나를 당황케 했다. 하지만 정보가 한가지가 아니었기에 문 앞에서 대문에 붙어있는 계량기 수치를 대략적으로 스캔하니 머리속에 기억된 모습과 유사했기에 당당히 열쇠를 꽂을 수 있었다. 


술자리가 파하면서 택시를 잡아서 동래역까지 막차 시간인 23:10전에 도착하겠다는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도착에 실패 했을 때의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지도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다. 다행히 5분전에 도착해 유유히 담배를 한대 피우고 버스를 탈 수 있었고, 8% 남은 배터리를 보면서 먼저 지도를 이용해 내릴 정류장과 방향을 숙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려서 오는 과정에서 어제 본 휴먼시아 아파트를 확인하면서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집 앞에서 어느 호수의 층계로 진입할 지도 어제 스쳐본 기억을 이용해 어렴풋한 감을 잡았다. 전체와 부분의 정보를 종합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경험적인 정보 역시 신뢰도를 입증하는데 자연스럽게 사용되었다. 왠지 아무도 없는 집에 열쇠를 꽂아 들어오면서 제대로 왔을지 걱정할 어머니에 대한 센스있는 한마디도 생각했다.


"뭐가 걱정이고? 날 때부터 탑재해준 훌륭한 자체 네비게이션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찾아왔지."


생각보다 어머니의 반응이 무미건조 했지만 스스로를 뿌듯해 하며 토닥토닥한다. 부모님, 길찾기 능력뿐 아니라 전체와 부분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분석 할 수 있는 사고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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