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정리된 결과 리포트까지 들고 "쓰기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 지 4개월만에 드래프트를 보냈다. 

여전히 초록과 서론은 없는 채...


논문을 쓰고 있자니 난 연구가 적성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한다.

생각해보면 예전부터 공부는 곧잘했고,

시험은 공부한 양에 비해서는 잘 치는 편이었는데,

이걸두고 다른 사람들은 (특히 이모 교수와 그녀의 학생) "bottom line"을 잘 파악한다는 식으로 

나를 한 껏 추켜 세워줬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그냥 눈치가 빠른 것 뿐인게 아닌가 싶다.

남들만큼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하지도 못하고,

내용을 꼭꼭 씹에서 100프로를 이해하고 있지도 않은 채,

그냥 눈치 껏 이 맥락엔 이런 얘기라는 식으로 공부를 해온 셈이고,

그 결과는 이모양 이꼴?


천재가 아닌 개미 천문학자를 자처하면서 

베짱이처럼 살고 있으니 도무지 발전이 없다.


외국에서는 말도 잘 안통하니 그저 과묵한데

논문도 못 써내고 있으니

나의 천문학자로써의 실력은 어디쯤인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다.


뭐 이러는 것도 몇 년을 하다보니 패턴이 있어서

논문을 손에서 놓고 논문 쓰기 직전 단계까지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다시 자신감이 붙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문제는 이제는 논문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것 같다는 것...

보낸 드래프트의 후속 논문도 빨리 쓰기 시작해야하고

그러는 중에 지금 하는 연구가 마무리 되면 이것도 써야 할테니.


웅쌤과 이브에게 논문을 보내면서 자조섞인 어조로 (내가 생각하기에)

I'm really sorry that I'm so tardy in writing a paper.

라고 써서 보냈는데, 그냥 빈말이라도 격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두 교수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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