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느라 바빴고, 돌아왔더니 달라진건 없는데 이래저래 할일은 많이 있고, 할일을 하는 사이에 또 일들이 생기고 번민이 생기다 보니 가벼운 페북이나 인스타 (이건 또 왜 시작했는지) 외에 블로그에 글을 쓸 기회는 갖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세월호 사고도 어느새 1년이 됐고 늘 그렇듯 한국의 어이를 상실케 하는 사건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데 스쳐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지 못하고 다 날려버렸다. 생각이 스칠 때 글로 정리해서 써놓는 버릇을 들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드디어 차를 다시 샀는데 차를 다시 사고나니 통장잔고가 또 바닥을 드러냈다. 딱 1년전쯤에 차때문에 매번 잔고가 바닥난다는 푸념을 했는데 또 그런 상황이다. 그래도 결혼도 하느라 돈도 썼고 한국에 남겨놓고온 돈도 조금, 캐나다에 와이프한테 보내놓은 돈도 조금 해서 엄밀히 제로는 아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럴때면 늘 학계를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막상 떠난다고 받아줄 데는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럼 남아서 살아남을 만큼 치열하게 하고는 있나 자책도 들고, 금세 우울해 진다. 그래도 나름 쉽게 털어내고 회복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반복되니까 찌꺼기가 조금씩 쌓여서 가득 찬 느낌이다.


나와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한 고민은 끝이 없다. 일단 내가 잘먹고 잘살고 여유를 갖고 힘들지 않고 싶은데, 그런 상황은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 것 같지 않다.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일단' 이라는 말로 사회에 대한 고민을 접어두는건 결국 핑계고 회피다. 막상 관심을 둔다고 한들 당장 할 수 있는게 뭔지도 모르겠고, 술자리 대화에서 내가 양식있는 사람인 척 하는데 말고는 어디에 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관심보다는 관심이 필요하겠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관심보다는 실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하겠지. 


얼마전에 워크샵을 하면서 마크 클룸홀쯔가 학교에 왔었다. 그리고 최근에 프리즌 티칭에 관한 이메일이 돌았다. 마크에 대해 "거만하고 자기 연구에 대해 과대포장하는 목소리가 큰 그냥 완전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왠지 모르게 갖고 있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성실하게 연구하고 자기 연구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주도적으로 토의할 줄 아는 좋은 학자이다. 프리즌 티칭 프로그램를 이곳 프린스턴에서 주도적으로 시작한것도 마크고 캘리포니아에 가서도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주도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여기서는 지금 꽤 큰 규모의 프로그램 정착해있고 범죄자의 재 사회화에 기여하는 것 같다. 문제의식을 갖고 행동으로옮겨서 성과를 만들어 낼 줄 아는 그런 좋은 리더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 듯 하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지만 부인때문에 호주로 옮긴다는데 가정적인 남편이기도 한 것 같다. 큰 덩치에 안어울리게 (어떻게 그 큰 덩치가 유지되는지 모를정도로) 채식을 하는것도 그의 특이한 면모다.


결국 괜한 선입견으로 사람을 볼 게 아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마크 같은 사람은 연구적으로도 훌륭하고 주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니 교수가 되기에 손색이 없다. 반면 나는 연구적 성과도 그리 크지 않으면서 주변과 활발한 교류도 하지않고 사회적으로 도움되는 활동도 하지 않으니 소위 "목소리 크고 말많은" 다른 포닥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며 그게 다 네트워킹의 성공이라고 치부하며 내가 외국인이라서 (한국인이라서) 그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건 사실 좀 비겁하고 치졸하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내 욕심만 챙기고 사는것. 산다는게 그런건 아니겠지. 한동안 넓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점점 좁아지고 있었나보다. 이렇게 글이라도 써버릇 하면서 가끔씩 반성하면서 살면 다시 넓힐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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