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처 미팅이 오늘/내일 진행된다. 반은 플라즈마 피직스 관련이라 오늘은 오전 톡만 들었다. 톡을 듣고 있노라니 오만가지 상념이 머리를 스친다.


1. 많은 대가들이 그렇지만 스피처 할아버지는 참 대단하다. 심지어 내가 연구하는데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는 대가임에도 스피처 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하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이번 미팅의 설명을 보니 거의 뭐 내가 하는일의 시조같은 분이다. 워크샵 소개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이렇다.


Spitzer is credited with founding the discipline of "interstellar matter," which concerns the gas and dust between stars from which new stars form.


성간물질이라는 분야를 만들었다는데 뭐 더 할말이 필요할까. (살아있었다면) 100세인 분을 기리는 학회다 보니 발표하는 사람들은 최소한 스피처의 학문적 손자 또는 증손자 뻘이다.


발표자의 절반은 플라즈마 피직스라고 했는데, 스피처는 프린스턴 플라즈마 피직스 랩의 설립자다. 그리고 허블 망원경의 아버지란다. 내가 페이스북에 스피처 할아버지 학회에대해 썼더니 원핵과에서 핵융합을 전공한 동아리 선배가 스텔라레이터를 만든사람이냐고 묻더라. 그게 뭔지 몰랐는데 핫 플라즈마를 잡아두기 위한 장치란다. 토카막이 나오기 전에는 널리 쓰였던 듯 하다.


2. 첫번째 스피커는 MRI로 (MagnetoRotational Instability) 유명한 스티븐 발부스였다. 기체역학을 다루는데 있어서 여전히 선형해석으로 많은 것을 해내고 있어서 나의 로망중의 하나인 발부스는 스피처의 학문적 증손자다. Lyman Spitzer - George Field - Chris McKee - Steven Balbus. 하핫. 한명한명이 내가 하는 연구의 바이블 같은 논문을 써낸 사람들이다. 


스티븐 발부스는 (태선이가 알려줬는데) 머리가 앞뒤로 길다. 딱히 지각하지 않고 보면 이상할 게 없는데 일반적인 isotropic한 얼굴형이 아니라 좌우가 좀 좁고 앞뒤가 좀 길다. 일반적인 형태에 비해. 아무튼 발표를 잘하더라. 바로뒤에 이어진 플라즈마 피직스관련 톡을 하신분과 상당히 비교되게. 


"one slide one idea"


이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는다. 또한 스티븐의 톡은 그 특성상 수식을 포함함에도 그렇게 명쾌할 수 없다. Spitzer conductivity에서 시작해서 자신의 연구까지 이어지는 과정에 참으로 물 흐르듯 부드럽다. 어렵게 봐왔던 여러 논문의 내용을 핵심만 잘 간추려 전달한다. 갖고싶다, 그 능력. 하악하악.


3. 플라즈마 피직스 톡에 가볍게 졸아주고 세번째 스피커인 이브의 차례가 됐다. 아. 이브도 역시 존경스럽다. 스티븐처럼 간단하게 핵심만 전달하는 형태를 취하진 않았지만 논리정연한 그녀의 설명은 또다른 발표의 정석이다. 내가 하고있는 일과는 좀 다른, 더 작은 규모의 코어 형성에 관한 일인데, 이건 내가 산타누랑 하려고 하는 일과 겹친다. 문제는 접근 방향이 좀 다른데, 몇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이브의 접근이 더 그럴 듯 해 보인다. ㅜㅜ 산타누랑 하는 일을 계속 진행해도 될 지 모르겠다.


이브의 발표이후 제리의 질문은 또다른 볼거리. 사실 부부가 같은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이고 같은 학과에 재직하는 경우는 그래도 적지 않은 것 같은데, 부모-자식간이 이렇게 천문학이란 좁은 분야에서 one of the top school에 재직하는건 참 신기한 일인 것 같다.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제리가 직접 찾아가서 이브에게 질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으니 뭔가 부럽고 재미있다. 


4. 운좋게 프린스턴에 오고나서 가만히 앉아서 대가들의 톡을 들을 기회가 많다. 뿐만 아니라 학계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젊은 학자들은 톡은 학과차원의 콜로퀴움이 아닌 분야별 작은 세미나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다. 가끔 이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학자들을 보고있노라면 내가 이짓을 계속 해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는 과연 이브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좋은 붓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나마 좋은 붓이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좋은 환경에 있으니 이런저런 자극에 노출 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너무 노출되다보니 한없이 작은 자신이 한심하다. 큰 연못에 있는 작은 물고기의 비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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