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프린스턴이나 IAS에서 포닥을 같이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그 땐 참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을 그냥 이야기 하는 것에 불과했는데, 

여차저차해서 프린스턴에 포닥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잘 풀리는 인생인건가?


4월에 학교에서 만난 이모교수가 나에게 신이 나를 선택한 것 같다는 얘기를 해서

썩은 미소를 날려 줬는데...


포닥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은 요즘에 첫번째 포닥 기간을 고스란히 날려 먹고도

잘도 프린스턴이라는 좋은 대학에 포닥을 가게된 이 상황에

나는 행복해 해야 하는 건가?


고등학교를 입학 한 이후로 천문학을 하겠다고 결심하고

대학에 입학하고

대학원에 진학하고

학위를 마치고

두번의 포닥을 하게된

대략 15년의 시간동안


나는 한번도 절실한 적이 없었고

매번 도망치려고 할 때 쯤에

왠지 이 것을 해야만 할 것 같고

이 것이 내가 잘 하는 일인 것 같고

이런 기회가 왔는데 계속 하지 않는 것은 실수인 것 같은

그런 생각을 하게하는 일들이 있었다.


고3때 경시대회를 완전 말아먹었다고 생각하고 포기한 시점에서 예상외로 받은 금상,

학부 2학년때 집이 어려워 지면서 휴학하고 과외로 학비를 고민할 시점에서 받은 김태영 장학금,

대학원 진학시 학비문제로 고민할 때, 수료시까지 GSI로 학비는 보장해준다는 교수님,

박사과정 중 슬럼프에 빠져서 다른 일에 눈돌릴 때 나의 천문학자로서의 능력을 밑도끝도없이 추켜세우던 전 여자친구,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추리고 추려서 포닥을 지원하던 차에 이브가 포닥을 뽑겠다고해서 쓰게 된 프린스턴,

결국 이번 시즌에 가장 가고 싶었던 자리에 유일하게 되서 가게된 지금.


앞으로 2년이나 3년을 얼마나 더 외로워 하면서, 곁눈질 하면서 보내게 될 지 모르겠다.

근데 일단 15년이나 여기에 붙어있게 만든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면

지금 보다는, 지금까지 보다는 좀 더 열심히 해서 끝을 봐야 하는 거겠지?


아니, 15년동안 다른일에 관심이 갈 때 마다 

마치 뭔가가 나를 억지로 붙어있게 했다고, 

나는 이 일을 하도록 선택 받았다고 믿고 싶어 한 

스스로가 가진 천문학에 대한 미련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이 일을 계속 하겠지.


이왕이면 거창하게 이모교수 말마따나

신이 나를 천문학을 하도록 선택 했다고 한번 믿어나 볼까?


그래도 좋아서 하던 때가 있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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