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랖에서 7선 국회의원인 정몽준이 26년동안 대표 발의한 법안이 14건이고 이 중 9건은 임기만료로 폐기, 3건은 계류중, 통과한건 두건이라는 글을 봤다. 이걸 학계에 적용하면 26년동안 1저자 (또는 교신저자) 논문이 14건인데 9건은 리젝먹고 3건은 심사중이고 게제된건 2건이라는 얘기와 비슷하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아주 무능력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정몽준을 꾸준히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지역구 사람들이 바보인가 하면 그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싶다. 정몽준이라는 나름 이름있는 거물급 정치인을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둠으로써 그 지역의 예산을 따내고 사업을 유치하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으므로 그냥 추측.) 이건 마치 네트웍만 잘하고 펀드를 잘 따는 사람을 교수에 임용시키는 대학과 별반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교수들은 둘 다 잘하지만) 둘 중 하나만 놓고 보면 적당히 논문 잘쓰고 자기분야에서 독보적이진 않지만 건실하게 일하는 학자보다 네트웍 잘하고 펀드 잘 따는 사람을 대학이 원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학문 자체의 발전으로 보면 (학계의 발전은 또 그런 사람들이 잘 이끌기도 한다)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 같다. (사실 이것도 단정짓기는 힘들다. 그런 건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은 대개 제대로 대우를 못 받아도 꾸준히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같은 사람은 계속 때려칠 생각을 하면서 일을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하고 싶은데 나같은 사람의 학문에 대한 영향력을 미미하다는 슬픈 진실.) 


만약 이게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고 치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겠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능력하지만 펀드를 잘 따오는 학자를 고용해서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또는


"일부 지역구 주민은, 또는 유권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능력하지만 예산을 잘 따오는 정치인에게 투표를 함으로써 국가의 발전을 (아 이말은 별로 쓰고싶지 않은데 일대일 대응을 시키다보니 ㅜㅜ) 저해하고 있다." 


다시 원래 얘기로 돌아가서 정몽준은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으로써의 능력은 없지만 정치력은 있는 셈이다. (물론 대화와 토론, 설득을 통한 정치력이 아니라 외적인 요인으로 빌려다 쓰는 정치력이긴 하지만. 박근혜가 그렇듯이.) 그나마 이런 정치력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억지로, 정말 억지로) 국회 정도라고 해두자. 그럼 그냥 그러고 살았으면 좋겠다. 정말 능력이 필요한 행정부에 들어오려고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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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알아본 결과 법안의 가결율은 매우 낮다. 수월성이 네이쳐 수준인 저널 느낌이랄까. 법안발의와 폐기, 가결의 숫자를 논문으로 대응하는데는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학자라도 임팩트 있는 논문 한편이 나을 수 있으니 뒤에 따라붙는 얘기들는 그냥 내가 정치인이 싫고 새누리당이 싫어서 하는 얘기라고 치자. 그리고 학자로써의 정치력이 부재한 내 자신에 대한 한탄이라고 해두자. 그래도 지방선거에서 정몽준이 서울시장이 되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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