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을 (영어로) 쓰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첨에는 이게 글쓰기가 문제인지 영어가 문제인지 혼돈스러울 때가 있었다. 논문을 쓰기 시작한지 어느 덧 십년에 가까워 지다보니 지금은 글쓰기 (특히, 논문쓰기) 보다는 영어가 더 큰 짐으로 남았다. 남았다기 보단 영어는 나에게 항상 큰 짐이었고, 짐이고, 짐일 것이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이번에 논문을 수정하면서 이브에게 내 영어에 대한 general comments를 달라고 했다. 


Regarding your writing, I think that it is generally quite clear in terms of getting across your scientific points and even conveying subtle ideas. However, the English grammar still does have some issues (and these are not always issues, only some of the time), including placement of modifiers, when to use a definite article, which verb tense to use, etc. Some of these may be more a question of “natural-sounding” style rather than grammar rules. For this purpose, it might be more helpful for you to watch English-language movies or TV (with lots of dialog) or to read English newspapers, books, and magazines, than to study grammar. Hearing and practicing is the best way to “natural-sounding” English.


이런 착한 사람. 문법이 문제라고 했다가 상처받을까봐 항상 그런건 아니라고 덧붙여 주다니. 해결책이야 뻔하고 모르던바가 아니지만 내가 쓴 레프리에 대한 응답을 고쳐주면서 일일이 이건 이래서 고쳤고 저건 저래서 고쳤고 라고 써주는 세심함과 함께보니 뻔한 답이 뻔하게 안보인다. 이브의 어머니가 시인이라는데 그래서 이브가 영어를 더 잘 쓰는 거겠지?


암튼, 좋은 스승을 갖는다는 건 언제나 행운이다. 한가지 더 느끼는건, 이정도로 좋은 스승이 될 수 없을 것 같으면 교수는 포기하고 그냥 조용히 연구자로 사는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괜히 어설프게 애들 미래를 망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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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히 스랖을 열심히 보는 와중에 정치학과 대학원생인 박천우씨가 썼다는 프레시안 기고문을 봤다.


서울대 총장님, 이게 정녕 대학 맞습니까?


내용의 핵심은 정치학과에서 정년 퇴임하신 김세균 교수에 대한 명예교수 임명이 일전의 '희망버스'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보류된 것에대한 비판이다. 글의 취지와 내용 모두 훌륭하고 알려야 할 것이며 이런 기고가 필요하다는데 동감한다. 


그런데, 이 글에는 흥미로운 추신이 달려있다.  "추신 : 총장님이 발행하는 <대학신문>에서 게재를 거부했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발행인이 총장으로 되어있는 <대학신문>의 편집 방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누가 스랖에 이 글을 긁어 왔고, 많은 사람들이 <대학신문>에 비판을 가했다. 이에 <대학신문> 편집장 이문원씨가 간단한 해명을 했다.


http://www.snulife.com/?mid=snuplaza&document_srl=20762146&list_type=S - 33번 댓글


요약하면 형식과 내용이 기고하기로 한 '발언대'라는 지면에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편집 과정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또한 김세균 교수의 명예교수 임명 보류 사안에 대해서는 이미 4개의 꼭지에서 기사를 실었기 때문에 단순히 총장의 압박 때문이라는 것은 억측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박천우씨는 또 반박글을 썼다.


대학신문 이문원편집장님의 댓글에 대한 '진지한 비판'


역시 편집장 이문원씨도 40번 댓글에 이를 반박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글 올립니다. 대학신문 이문원 편집장입니다.


오늘 (3/19) 추가로 올라온 글. 마무리가 깔끔하다고 보는데 아니라고 보는 사람도 많은가 보다.


**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대학신문>은 이 사안에 대한 총장의 압박을 받는다고 보기 어렵고 박천우씨의 글은 실을만 하기도 하지만 빠질만 하기도 했다는 인상이다. 프레시안에 기고한 것으로 사안을 공론화 하는 데 박천우씨는 그 역할을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괜한 추신으로 정작 '진지한 비판'이 주목받지 못하고 진실게임이나 하게된 것이 아쉽다. 많은 경우 소위 '음모론'이 이런 삐딱한 결과를 낳는다.


++ 이문원 편집장의 마지막 글에 나타난 것 처럼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이 있었고, 그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해명이 있었던 사건이라고 보인다. 문제제기 방식이 프레시안 기고문의 추신에서 시작한게 좋은 방식은 아니었지만 서로 인정할 부분을 인정하고 해명할 부분을 해명하면서 잘 일단락 되고, 본래의 의도에 맞게 김세균 교수의 명예교수 임용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론화 해서 올바른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


**


덧붙여, 많은 이들이 이 과정에서 <대학신문>의 편집장의 글빨에 감탄하고 있다. 

누군가 그의 이전 칼럼을 링크했는데 부러울 정도로 글을 잘 썼다.


비동시성의 동시성


마무리는 글 잘쓰는 사람이 부럽다는 결론. 

예전에 한승이가 <대학신문> 편집장을 한 것 같은데 한번도 한승이 글을 제대로 본 적이 없네. 잘 지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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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김규항씨의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내 문체 만들기와 문장 다듬기"라는 제목의 강연을 한다는 사실을 보았다. 관련한 두 링크 보고 흥미로워서 여기에 따왔다.

 

http://gyuhang.net/577


http://blog.aladin.co.kr/mramor/841840


요즘같이 글쓰기에 어려움을 절감하는 시기에 이런 강연이라니 급 땡기지만 갈 수 없는 처지다. 관련 글을 읽고 있자니 글을 못 쓰는 가장 큰 이유는 퇴고를 하지 않는 버릇에 있다. 글을 진지하게 써본 것은 사실상 논문을 쓸 때 뿐이고, 수업시간에 과제를 통해 쓰는 글이나 인터넷 상에 싸지르는 글을 퇴고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으니 결국엔 살면서 퇴고라는 걸 해본 적은 손에 꼽을 만 하다. 김규항씨는 서너번의 퇴고를 통해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리듬을 살리는 작업을 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당연히 초고의 완성도도 꽤나 높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을 못 쓰는 나는 초고의 완성도도 낮고 퇴고도 해 버릇 하지 않으니, 당연히 글이 엉망일 수 밖에 없다. 


퇴고의 중요성은 사실 모르던 바는 아니다. 결국 습관이 안되있고 익숙치 않은 것이 문제인데, 이 부분을 내가 고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다. 테니스를 처음 배울 때 익숙치 않은 포-핸드를 요즘 조금이라도 능숙하게 치게 된 것은 그동안 꾸준히, 일주일에 두번씩 두달가량을 빠지지 않고 노력한 덕일 테다. 퇴고는 매우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다. 짧은 글도 퇴고하는데 익숙치 않은 나같은 사람에게 논문 전체를 퇴고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최소한 테니스를 배우는 열정으로 퇴고도 해야할 일이다. 


변명을 하자면 익숙한 한글로도 그 정도의 긴 글을 쓰고 퇴고하는게 습관화 되지 않은 내가, 못하는 영어로 그 고통의 작업을 진득하게 할 것을 스스로에게 기대한 게 잘못이다. 지금부터라도 한글에서 출발해서 쓰고 고치는 작업을 습관화 하자.


문체는 그 다음에 생각할 일이다. 야구 스윙에도 폼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만들어 지기 위해서는 일단 꾸준히 스윙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문체가 생기려면 그 만큼 글을 써야 할 일이다. 잠시 천문학을 접고 글 공부를 해야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이래 저래 대학시절 소홀히 했던 교양과목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노느라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 할거 였으면 교양 공부를 더 할걸 그랬다. 전공 공부야 평생을 할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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