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사람이 연주한 CD를 들을 때면 음계의 진동가지 느끼고 싶어서 저절로 숨을 참게 돼.
그녀가 소개한 피아니스트는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클라라 하스킬은 6살 되던해에 한번들은 모짜르트의 음악을 악보도 없이 그대로 연주하고
또, 즉석에서 조옮김을 해서 연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빠리 콘체르바토르에 입학해서 우등으로 졸업을 했고,
천재적인 재능을 갖고있는 미모의 소녀로 세상에 알려졌다.
그런데 그런 소녀에게 갑자기 병마가 다가왔다.
그녀는 18살에 희귀병인 세포 에 걸려서 4년동안 온몸에 깁스를 하고 지내야 했다.
12년이라는 오랜 공백끝에 그녀가 무대에 올랐을때 관중들은 너무 놀라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답던 소녀는 사라지고 곱추로 변한 흉한 모습의 여인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 무대를 본 사람들은 모짜르트의 모짜르트라며 그녀를 칭송했지만 그녀의 불행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유대인이었던 그녀는 길고 긴 피난길에 올라야 했고 또다시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격렬한 고통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레퍼토리가 다양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연주한 모짜르트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워서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그런 불행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매우 밝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원망하지 않았고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행복에 집중했다.
그녀의 일생은 행복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이런 대답을 들려준다.
불운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행운에 집중하는가.
문제는 포커싱이다.
2011년 1월 14일자 유희열의 라디오 천국 - 그녀가 말했다
라천을 듣다가 이 이야기가 귀에 꽃혔다. 어쩌면 불행에 처한 사람에게 뻔하게 할 수 있는 말.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것은 불운 속에 있는 (또는 있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오히려 큰 상처가 될 지 모른다. 하지만 요즘들어 느낀 인생의 진리인 '새옹지마'를 적용하는 태도, 즉,
'불운을 겪을 때 다가올 행운을 기대하는가' 아니면 '행운이 왔을 때 다가올 불운을 걱정하는가'
와 일맥상통하는 얘기다. 태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일 수 있다. 청담동 앨리스에 나온 한세경처럼 '행운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결국은 행운에 집중하고 다가올 행운을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행복의 조건일 수 밖에 없는데.
라디오에서 이 이야기 이후에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한 모짜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0번 3악장 알레그로가 흘러나온다. 이 부분을 잘라서 8분짜리 mp3로 만들었지만 저작권에 걸리니 공유하지 못하는게 안타깝다. 원한다면 개인적으로 요청하길. :)
노희경 작가와 송혜교의 조합으로 기대하고 있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시작했다. 학부 3학년 2학기 폭풍같이 몰아치던 과제에 허덕일 때, 제대하고 서울로 놀러와 있던 형의 영향으로 보게된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드라마 '사랑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양자역학, 열역학, 천체물리, 천문관측, 항성대기라는 무시무시한 전공의 압박속에서 마지막 기말과제들을 폭풍처럼 마치고 시험을 앞두고 '잠깐 한두편만 볼까?'하고 시작했다가 앉은자리에서 정주행 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이후 히로스에 료코 주연의 드라마를 모두 정주행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드라마.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던 일본어 제목 '아이난떼 이라나이, 나츠'.
'그 겨울...'을 보는 동안 뭔가 어설픈 느낌에 다시 찾아서 1편을 보니 '사랑따윈...'도 꽤나 어설픈 드라마 였구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면서 '괜히 다시 봐서 그 때의 감동을 잃어버리는구나'하며 후회하고 있을 즈음 1편이 끝나면서 OST가 흘러 나온다. 그 순간 그 시절, 학부 3학년 2학기 자취방의 기억이 와락 덥쳐온다. 1층에 오락실과 어심, 2층에 헝그리즘, 3층에 성인 PC방이 있던 그 자취방. 지금 내가 있는 아파트의 bedroom 크기의 1/3만한 작은 방에 8개 정도의 방이 하나의 화장실을 공유하게 설계되어 있던 그 방. 그 방에서 놀러온 형의 자존심을 긁는 잔소리를 하며 불편하게 지냈던 그 시절. 자잘하고 세세한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사랑따윈 필요없는 "여름"과 바람이 부는 "겨울"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과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 노희경 작가가 겨울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왠지 두 드라마의 진도를 맞추며 평행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차승조는 (박시후 분) 부잣집 도련님. 아버지에 대한 반감으로 절연하고 프랑스에서 거지처럼 전전하다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누가 3만유로에 사줘서 그때부터 승승장구, 유명 브랜드의 한국 지사장이되어 금의환향. 한세경은 (문근영 분) 가난한집 딸. 좋다는 의상디자인과를 졸업해서 암만 열심히 해도 겨우 인턴자리 하나 얻기 힘든 상황. 사랑에 목메다 포기하고 돈많은 남자 잡아서 청담동에 들어가기로 결심, 캔디 코스프레해서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연출하며 연애얘기가 진행된다.
15화에서 모든걸 알아버린 차승조가 분노하며 한세경에게 왜,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를 계속 추궁한다. 세상에 자기편이 없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상은 자신에게 행운을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는 얘기를 한다. 차승조는 이해하지 못하며 자신도 가난하게 살아봤지만 열심히 하니까 누군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그림을 사줘서 이렇게 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한세경: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한 건 절대 니가 잘못한 것이 아니야." 나한테 그렇게 말해주는 세상은 없었으니까.
차승조: 가난이 벼슬이야? 가난하면 사람 진심갖고 이용해도 돼? 가난하고 사랑이 무슨 상관이야? 가난. 벼슬 아니야.
나도 똑같이 겪었어. 그리고 이자리까지 왔어. 가난? 핑계대지마.
한세경: 승조씨한텐 행운이 있었잖아요.
차승조: 행운?
한세경: 그림이요. 그런 행운 아무한테나 오는게 아니에요.
차승조: 그게 행운이었다고? 어떤 미친놈이 가치도 없는걸 3만유로나 주고 사? 어떻게 그걸 행운으로 매도하지? 설사 행운이라고 해도 그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열심히 살았으니까 그 대가로 세상이 준거야
한세경: 우리한텐 그런 세상은 없었어요. 열심히 노력하면 엄청난 일이 벌어지는 세상같은거. 한번도 살아본적 없었다구요.
차승조: 그럼, 내가 운좋게 얻어걸려서 운으로 여기까지 왔다는거야?
한세경: 타고난 운을 이어간 거겠죠.
차승조: 타고나? 내가 혼자힘으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잘 알잖아!
한세경: 승조씨는 행운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요. 근데 난 행운같은거 쉽게 믿을 수 없는 사람이에요.
차승조: 그런 루저들이나 하는소리 그만해!
한세경: 그럼 승조씨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가난한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한건 그냥 어리석어서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가난한건 내가 내 인생을 잘못살았기 때문이라는 거네요?
차승조: ... 그러네.
그림얘기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그 그림을 차승조의 아버지가 몰래 사준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극 중에서 차승조와 그의 의사 친구는 (박광현 분) 그 사실을 생각조차 못한다. 극 중에서 한세경과 주변 친구, 차승조의 비서는 모두 다 뻔하게 아버지일 것이라고 예상한다. 차승조가 충격을 먹으며 15화 끝.
두산그룹 회장 아들 박서원이라고 있다. 광고계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어릴때부터 동네 양아치서부터해서 대학교들어갔다 자퇴했다 유학갔다 유학가선 전공을 5번쯤 바꾸고 그러다 그러다 디자인에 흥미를 느껴 그걸 존나 열심히 공부해서 광고계의 대부중 하나로 자리잡는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내가 노력해서 성공한건데 사람들이 왜 '역시 재벌2세니깐 성공했지'라는 눈초리로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라는 얘기가 있었다. 자기만 모를거다. 양아치 짓을 해도 억지로라도 대학에 보내주고 유학도 보내주고 전공을 5번쯤 바꾸면서 흥미 있게 열심히 공부할 것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이 몇명이나 될 지.
중간에 나오는 차승조의 독백.
청담동이 뭐라고... 한세경은 그렇게까지 해서 들어오려고 했을까? 여긴 그냥 내가 사는 곳일 뿐인데.
나도 '서울대(또는 과학고)가 뭐라고... 그냥 내가 다니는 학교일 뿐인데.'라고 쉽게 말한적이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목메고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부모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면 차승조나 박서원이나 다를 바 없는 건지도.
내가 과학고에 다닐 때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요즘 보니 영재학교 일년에 천만원이 든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그정도는 아니었겠지만 기숙사비, 식비, 간식비등이 기본적으로 들어가니 타 학교에 비해 많이 들었겠지. 마침 형도 대학에 들어가고 아버지는 그 돈을 대기위해 힘드셨겠지. 월급 만으로 힘드셨을테고 자연스럽게 주식에 손을 대셨을 것이다. 결과는 IMF와 맞물려 처참했을테고 어머니께 말씀도 못하시고 몇 년을 홀로 메꾸시려다 결국은 더 커지고 커져서 대학교 2학년때 터져서 난리가 났다. 나는 대학가서 1년동안 등록금에 생활비를 꼬박꼬박 받아써가며 집에 빚이 늘어가는데 크게 일조 했다. 어머니는 전화해서 어떻게 하냐고 한숨만 쉬시고, 마침 동아리 회장에 출마하기로 하고 신나게 술마시고 놀던 나는 '그럼 휴학하고 과외나 할까?'라고 잠깐 생각했다가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그냥 버텼다. 생활비는 끊겼지만 2학년동안 그래도 등록금은 알차게 받았고, 2학기를 회장일을 하면서 고스란히 날려먹었지만 동아리에서 주는 김태영 장학금 덕분에 3학년은 장학금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3학년에 만회한 학점으로 4학년은 등록금을 반정도만 내면서 다닐 수 있었다. 중간중간에 했던 고액과외 등으로 생활비를 충당 했고, 대학원부터는 강의조교를 9학기 하면서 등록금을 한번도 안내고 다닐 수 있었다.
아직도 부모님은 별로 도와준 것도 없는데 혼자서 잘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하시고, 나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나만한 애만 낳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내가 잘 되면 다 내가 열심히하고 잘나서 그런 줄 알지. 매번 '나도 돈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한번 휴학하고 해외여행 다니면서 좀 쉬고 싶다.', '나도 방황 좀 해보고 딴 공부도 좀 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며 참 불우하게 자수성가한 척 부모님을 원망하고 신세한탄하며 지냈다. '왜 쓸데없이 주식투자에 손을대서 집도 날려먹고 빚만 잔뜩 지셨을까?' 아버지를 원망했다. 진심으로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된건 사실 몇년 안된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으나 아버지는 그 상황에서 당신 나름의 돌파구를 찾기위해 애 쓰셨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내가 천문학과에 진학하고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에 한번도 반대가 없으셨다. 스랖에 자주 올라오는 사람들 얘기처럼 집에서 돈좀 보내달라고 얘기하신적 없고, 빨리 취직해서 돈을 벌어서 집에 보탬이 되라고 강요하신적 없다. 집에 부담만 안주면 내가 뭘 하던 내 자유가 아니냐고 악을 쓸 필요도 없었다.
내가 잘 되면 다 내가 열심히하고 잘나서 그런 줄 알지. 인생사 새옹지마에서 나쁜일 이후에 좋은일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는게 한세경이 얘기하는 '행운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얼마나 큰 행운인지. 주변에서 (부모님을 포함한) 모두가 얼마나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겸손하자. 겸손하자. 겸손하자.
차도 없고 하여 크리스마스 연휴에 집밖으로 한발짝도 안나가고 일해야지 했는데 역시 집에서는 일이 잘 안된다. 이래저래 빈둥거리다가 그사세를 다시 보기로 결정하고 3일에 걸쳐서 봤다. 이거 참 옛날 생각 많이나네. 이 드라마가 시청률이 5%대 밖에 안나왔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2008년 겨울. 연애를 시작할 당시에 본 드라마인데다 얘가 워낙 여기에 빠져 있어서 난 오히려 별로라고 생각 했었는데, 다시 보니 잘 만든 드라마인걸 인정하게 된다. 매 회 나오는 나레이션은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통찰이 있고, 3년의 연애가 끝나고 1년이 지나고 나니 그 당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 했던 드라마의 내용도 꽤나 와닿는 부분이 많다.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좀 끄적거릴라고 했는데 글로 잘 풀어내지지가 않네.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한국에서 사들고온 책 목록 중에도 유일하게 있는 소설책. 딱히 소설을 싫어한다기 보다 책을 고를 때 당장 내가 부족하게 느낀 인문사회적 교양을 쌓는데 너무 목적을 둬서 그런지 소설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그래도 소설책도 하나는 읽어야지 싶어서 선택한게 이 책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연구실에 갖다놓고 심심할 때 봐야지 하다가 하루동안 연구는 안하고 책만 읽었다. 오피스에서. -_-;; 처음엔 그냥 그랬는데 좀 지나니 너무 자연스럽게 읽혀서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다 읽고 막연히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소설책을 읽고나면 그런 생각이 가끔 드는데, 특히 주인공이 글을 쓰는 그런 내용이 있으면 더 그렇다. 왠지 내 자전적인 이야기를 써내려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천문학과 대학원생이 주인공인 그런 소설을 쓰면 재밌겠다는 생각. 뭐 이런저런 책과는 관련없는 생각을 하다가 일단 감상부터 써야 겠다고 제목을 써놓고 저장해 놓은지 어느새 1주일이 지났다.
주인공이 조로증에 걸려서 곧 죽음을 앞둔 아이니 내용이 다분히 신파적일 수 있는데 그런 느낌이 들지않고 어찌보면 가볍게, 어찌보면 유쾌하게 써내려갔다. 전체 소설보다 뒤에 실린 주인공이 쓴 단편이 더 짧게, 강하게, 흡입력있게 다가오긴 했는데 그렇다고 전체 소설이 지루했던 건 아니다. 나름 아름이와 서하의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하다가 뒤통수 때리는 반전(?)에 좀 충격을 먹기도 했다. 주인공인 아름이가 '사랑의 리퀘스트'스러운 프로에 출연하면서 했던 다분히 삶에 대한 철학적인 얘기도 나름 공감가고 울림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낫지 않는 병에도 돈을 내려 할까요?"
라는 질문을 하는 부분에서 철저한 현실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쓸데 없다고 생각하는 천문학에도 돈을 내려 할까?"하는 질문과 책에 나온 대답처럼 "... 그래도 중요한 건 사람들이 너를 (천문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거야."가 정답일 것 같다는 다소 직업병적인 생각을 하면서... 뭐. 긴 시간규모에서 천문학은 뭔가를 변화시키기는 하지만 조금 다르다고 애써 생각도 하면서 결국 '좋아하게'만들어야 한다는 건 사람들이 혹 할 수 있는 제안서를 써야 한다는 거겠지 싶어서 우울했다.
링크된 기사에서 "... 통념에서 벗어날 때의 장편도 장편이라 할 수 있을까?"라는 비평을 보니 뭔가 꼰대스럽다. '꼰대스러움'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불끈 하지만 '통념에 부합하는 장편'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딱히 뭐라할 순 없다. 무지한 이과생으로서는 인문학, 예술, 체육에서 '통념'이라는게 과연 꼭 지켜야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시작은 '통념을 따르는 틀 안에서의 우수함'을 보이고 그 뒤에 '파격'이 따라와야 한다는데 어느정도 동의는 하지만...
손석희의 시선집중 중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 코너에서 처음 이덕일이라는 사람을 접했다. 어눌한 말투와는 달리 매우 흥미있는 내용을 차분히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매우 끌렸고, 책을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이덕일씨는 역사학자이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바로는 여러가지 논란이 많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 주류 사학계가 조선시대 노론 벽파에서 이어져온 식민 사관에 뿌리를 두고있고, 자신이 그것을 비판하는데 따른 반발이라는 식으로 논란을 일축한다. 주류 사학계의 주장은 그의 사료 해석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이야기 하는데, 역사에 대해 정돈된 지식이 없는 나로써는 판단 불가이다.
단지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이고 그의 책은 꽤나 흥미롭게 잘 써져있다. 이 책에서 그가 비판하는 송시열이라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승리자'인 노론에 의해 미화되었는지 아니면 그가 주장하는대로 송시열은 그리 좋은 정치가가 아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역사의 진실을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사람에 대한 엇갈린 평가를 통해 나의 삶을 반추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으니 나에게는 충분히 유익한 책이다.
이덕일씨가 송시열의 정치 방식이 지나치게 당론 중심적이고 사대부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며 주자를 지나치게 받들어 주자의 해석에 토를 다는 것에 대해 병적으로 반응하는 것에 대해 다양한 비판을 해 놓았지만, 송시열 개인의 삶을 봤을 때 청렴하고 효자이며 학자로써 끝없이 연구하는 대학자의 모습을 보인다는 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꾸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는 공식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의 해석을 받아들인다면) 송시열은 분명 수신에 성공한 사람이나 치국에 있어서 현재 보수진영의 정치 행태와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보수진영의 대권주자는 수신에 조차 성공하지 못했지만.) 명분으로 북벌을 논하지만 실제 행하지 않으며, 백성을 살피는척 하지만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반대했으며, 자신의 제자로 이루어진 당파(서인)의 당론을 지나치게 비호하느라 타 당파(남인)을 인정하지 않아 제대로 된 붕당정치를 이끌지 못했다. 그는 오직 사대부(고려시대에는 개혁세력이었지만 그당시에는 이미 기득권 세력이 된)의 이익만을 대변한다. 물론 매번 사화(정권교체)시 상대당을 포용하지 못하는 보복정치를 한 것은 남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의 연륜과 견식을 가진 학자가 왜 그리하지 못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히려 너무 학문에 몰두해서 그런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강한 근거를 만들기만하고 자신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받아들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모습은 현대에도 존재하는 몇몇 고집스런 교수들의 모습에서도 투영된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여유가 생기고 '이말도 옳고, 저말도 옳다. 허허허.'라는 황희정승스러운 마인드는 쉽게 생기는게 아닌가 보다. 그게 한 분야에 몰두해 공부를 해온 사람이면 일수록.